번지넷 : 유산 제2부 (로어,스토리)

a123456 2020.03.12 08:35 조회 수 : 28

 

 

유산 제2부

 

비상사태

비행 중: 천왕성 – 카일루스 기지 
외곽 경로 – 위치 미확인
 
"엑소 표본에서 데이터를 일부 추출했어요." 진주가 조종석 계기판에 내려앉았다. 로봇 진드기 두 마리가 의체 위를 기어 다녔다.
 
도약선은 프랙털 방사형으로 펼쳐지는 다색 궤적을 통과하여 맹렬한 속도로 칠흑 같은 우주를 갈랐다. 
 
아나는 조종석에 기대앉아 한쪽 무릎을 가슴께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일렁이는 빛줄기가 선체 주위를 휘도는 모습을 바라봤다. 올빼미 모양 보블헤드가 우주선의 떨림에 따라 고개를 까딱였다. 그리고 그 아래, 액자 속 캄린이 있었다.
 
"얘기해 봐." 아나가 진주를 향해 눈을 돌렸다.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황금기, 그것도 붕괴 언저리에 남겨진 거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해요." 
 
진주가 말을 이었다. "항쇄 메인프레임에서 다운로드한 걸 살펴봤어요. 그 정류장들은 라스푸틴이… 어… 항명하는 경우 그 정신을 분열시키기 위해 마련된 곳이예요."
 
"끔찍하네."
 
"에코는 그 이후에 발동하는 비상사태 대응계획인 것 같아요. 그의 두뇌에 대한 초석 도식도 포함되어 있었죠."
 
아나의 계기판에 있는 방울 스피커에서 자글거리는 빛이 나타났다. 헬멧은 뒤쪽 고리에 걸려 있었다. 라스푸틴의 업링크도 오프라인 상태였다.
 
아나는 잠시 그 정보를 곱씹었다. "기반 두뇌 모델이 있으면 분할 이후 억제 안정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겠지. 그건 두뇌의 진입로나 마찬가지잖아."
 
"그게… 끝이 아니에요." 진주가 계속했다. "여기 전체에 당신의 이름이 반복해서 교차 참조되어 있어요. 신경망로. 심리 언어학. 후보자 프로필이 포함된 엑소의 두뇌 지도. 클로비스 브레이가 라스푸틴의 기본 핵을 생존 가능한 숙주와 동기화한 것 같아요."
 
"아." 아나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왜 그랬을까? 억제한 뒤에 복제한다고? 재시작 버튼에 지나치게 공을 들인 거 같은데. 엑소라면 전쟁지능보다 많은 제약이 포함된 강력한 인공지능도 만들 수 있었겠지."
 
진주는 정보를 처리했다. "흠.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군요."
 
아나는 다시 별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자기 정신의 한 조각에 갇힌 채 묻혀 버리는 건 정말 끔찍하겠어. 더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를 거 아냐. 자신의 출발점이 어디인지도, 또 다른 자신의 끝이 어디인지도 알 수 없을 테고."
 
 "말이 나와서 말인데, 클로비스—9 현장은 '그의 패권에 78% 흡수되었어요.'" 전쟁지능의 메시지를 전달하느라 진주의 목소리가 왜곡됐다. "엄청 호들갑을 떨고 있네요."
 
아나는 밝은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캄린이 그 녀석 흉내 내던 거 기억해?"
 
"그 녀석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솔직히 재미있기는 했어요." 진주는 가볍게 짹짹거렸다. "그분은 지금도 달에서 일에 파묻혀 지내나요?"
 
"검은 정원에 구멍이 뚫렸어. 피라미드, 으스스한 신호, 게다가 벡스가 쏟아져 내린대. 올빼미 구역이 그런 일에 끼어들지 않을 수 있겠어?"
 
"고스트 정보망에 피라미드에 관한 소문이 돌았어요. 그게 의체를 훔친대요.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자신처럼 살아간다고 해요. 그러면서 숙주를 조종하고요." 진주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녀의 홍채가 아나의 치켜뜬 눈썹을 바라봤다. "도움이 안 되고 있죠?"
 
"그냥 다른 얘기나 하자."
 
진주가 어색하게 꿈틀거렸다. "곧 만나게 될 거예요."
 
"나도 알아."
 
"그들은 아이코라와 함께 일하고 있어요. 아무 문제 없을 거예요."
 
"나도 알아…"
 
그녀를 안심시키려는 듯한 따뜻한 색조가 아나의 헬멧 리시버를 통해 선실 전체에 흘러들었다.
 
"나도 안다고! 대체 언제 들어온 거야, 붉은 거장?" 아나는 거칠게 씩씩거렸다.
 
로봇 진드기들은 정글짐을 오르내리는 것처럼 진주의 의체에 매달려 돌아다녔다. 그중 하나가 여닫이 덮개에 매달려 위태롭게 흔들거렸다. "거기 또 누가 있는지 맞혀 보세요."
 
"내가 모르는 걸 넌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고스트 정보망이요. 에리스 몬도 거기 있어요. 수호자와 협력하고 있죠."
 
"에리스?" 아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에리스도 말주변이 좋은 편은 아니니 둘이 아주 잘 어울리겠는데." 그녀는 진드기를 향해 손짓했다. "그것들이 그렇게 기어 다녀도 정말 괜찮아?"
 
"얘네 이름은 포와 데임이에요. 전 이 아이들을 사랑해요." 진주가 진드기들을 보듬었다. "게다가 캠의 영혼이 우리와 함께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아나는 쿡쿡 웃은 후 이마를 긁적이고는 연대를 표하듯 주먹을 들어 올렸다. "함께 있어. 가득 채우고 있다고." 
 
도약선 주위에서 아른거리던 빛이 흔들리다가 갑자기 텅 빈 공간이 나타났다. 아나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공허를 바라봤다.
 
"음… 행성은 어디 있지?" 그녀는 천천히 조종석 주위를 둘러봤다.
 
그들은 무의 잔잔한 파도 위에 올라 정처 없이 흘러갔다. 광활한 은하수의 빛이 시선을 가득 채우고, 그 별빛의 바다 위 군데군데 검은 반점이 찍혀 있었다. 그 어둠에서 느껴지는 부재의 흔적은 거대한 우주의 장막 위 검은 태양에서 뻗어 나오는 어둠의 줄기처럼 아나의 눈에 또렷이 보였다. 
 
진주가 활기를 띠었다. 내부 센서가 갑자기 기울어졌다.  "도약이 끝나자마자 누군가 우릴 붙잡았어요. 항로를 벗어난 범위가…" 진주가 계산을 했다. "…3 천문단위네요?"
 
"뭐라고!?" 아나는 항법 컴퓨터에서 궤도 방정식을 수동으로 스캔했다. "계산에 오류가 있는데."
 
||점프 드라이브 오류: 조정 불량|| 메시지가 거품 스피커에 빽빽 울려 퍼졌다.
 
"조금 늦었군."
 
톡 쏘는 공감각적 간지럼이 차분한 붉은 빛과 함께 밀려들었다. 혹시라도 엿듣고 있는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게 하려는 듯 낮게 억눌린 느낌이었다.
 
"진정해. 항로를 벗어났다는 건 알지만 그렇게 멀지는 않아… 물론 상대적으로 얘기해서 그렇다는 거지만." 아나는 신호 간섭으로 뒤덮인 항법 컴퓨터 화면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들여다봤다. "좋아, 여기가 어딘지 알겠어. 잠깐만."
 
서서히 우주를 가로지르는 주름이 생겨났다. 그것이 구조를 압박했다. 별들 사이의 지점이 구부러지고 은하계를 구성하는 천체에 작은 간섭들을 일으켰다. 멀리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바람 속에서 펄럭이는 날개. 
 
"여긴 너무 어둡네요." 밖을 바라보는 진주의 목소리는 뭔가 다른 생각을 하는 듯했다. 전면창 너머 지평선 없는 광활한 공간이 펼쳐졌다.
 
"그럴 때 별이 가장 환하게 빛나는 거야, 진주. 현재 방위를 알아낼 수 있게 별자리 좀 찾아 줘."
||중력파 이상 현상 감지: 도약 재정렬 필요||
"우주선아, 내가 너보다 훨씬 빠르거든." 아나는 도약 벡터를 확인하고 빠르게 정렬 처리를 했다. 추진 장치가 부들거리며 깨어나 우주선을 태양 쪽으로 움직였다. 아나는 점프 드라이브를 시험 구동했다. 드라이브는 회전을 시작했지만 목표에 고정되기 전에 정지했다.
 
||중력파 이상 현상 감지: 도약 위험 요소 — 위치 미확인, 위험 요소 제거||
 
"어, 이건 좀 불안한데." 아나는 센서 부표를 우주선에서 내보냈다. 
 
라스푸틴이 붉게 달아오른 무쇠처럼 따끔하게 찔러왔다. 지속적인 압박. 그리고 국지적인 집착.
 
"기분이 이상해요." 진주는 멍해 보였다. "가야 해요."
 
아나는 점프 드라이브의 위치 재측정을 시작했다. "저기 분명히 이상한 공간이 있어."
 
||중력파 이상 현상 감지||
 
우주선이 휘청거렸다. 아나의 뱃속이 뒤틀렸다. 진주가 제자리에서 격렬하게 의체를 떨었다. 빛의 외피가 어떤 힘을 흡수하고 있었다.
 
아나의 헬멧에서 붉은 바늘이 불안감에 질려 증기를 뿜어내는 찻주전자처럼 압력을 가해 왔다.
 
은폐된 그림자가 영원만큼 멀지만 너무나도 가까운 진공 속에서 천천히 움직였다. 자기가 원하는 때에만, 오직 원하는 자들에게만 모습을 드러냈다.
 
아나는 침을 꿀꺽 삼켜 날뛰는 뱃속을 진정시켰다. "대체 저건 뭐지? 우리가 움직였어?"
 
 
"떠나요. 제발, 지금 당장. 아나." 진주는 전면창 유리에 찰싹 붙어 밖을 내다봤다.
 
||시스템 재정렬: 해결 방안 확보||
 
"됐어. 도약 목표 지점에 고정됐어."
 
||중력파 이상 현상 감지||
 
"또? 이래서야 그냥 타고 나가야 할 것 같은데." 아나는 중력파 조정 수치를 눈으로 확인하고 항법 컴퓨터에 입력했다. "도약 개시까지, 3… 2… 1…"
 
그들은 우주의 접힌 주름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형체 없는 항적이 그들을 떠밀었다. 우주선은 점프 드라이브에서 허용하는 한계를 크게 초과하는 속도로 하위 우주를 질주했다. 맹렬한 후류 안에서 모든 색채가 흐릿해졌다. 강렬한 전율에 아나의 감각이 끝없는 희열에 잠겼다. 조종석 코가 앞쪽으로 늘어나면서 멀리 떨어진 소실점을 향해 이끌렸다. 그녀는 안간힘을 쓰며 조종간을 똑바로 붙잡았다. 그 파동 안에서 그녀의 움직임은 작고, 보잘것없고, 너무나도 느린 것 같았다. 변동하는 인력 구역이 뒤틀리고 요동치며 그들을 미지의 세계로 내던지겠다며 위협했다. 주위의 조종석이 뒤틀리고 표시등이 규칙적으로 깜빡였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목표와 색채가 서서히 구체화되었다. 
 
선체의 내구도가 떨어지고 있었다. "아직은 안 돼."
 
||충돌: 기수, 천체 감지, 자동 낙하 실패||
 
아나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녀는 강제로 도약을 취소하고 드라이브를 정지시켰다. 추진기가 타 버리기 전에 우주에 내동댕이쳐진 우주선은 이내 안정되었다.
 
그렇게 나타난 그들은 성층권의 거상 앞에 선 난쟁이 같았다.
 
천왕성은 기울어진 고리 안의 다이커리 진주처럼 우주에 걸려 있었다.
 
아나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완벽해."
 
행성의 빛과 함께 창백하고 푸른 빛이 전면창에 쏟아졌다. 아나는 기지에 접근하는 경로를 그렸다. 셋은 서서히 앞으로 전진하며, 조용히 기운을 차렸다. 앞쪽 작은 신호기에서 빨간색 빛이 점멸했다. 행성의 뜨거운 시선 안에서 위성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마치 옛 전쟁에서 폭발의 순간만을 기다리던 폭뢰처럼, 계측용 바큇살이 다각형 몸통에서 비죽 뻗어 나와 있었다.
 
"저건 전쟁위성이에요." 진주가 침묵을 깨뜨렸다. 기이한 우주와 중력파를 어서 빨리 잊고 싶은 듯했다.
 
"이제야 운이 좀 따라 주네." 아나는 안도하는 듯했다. "방어 시스템에 데이지 체인으로 연결해서 라스푸틴을 기지 네트워크에 집어넣을 수 있겠지."
 
"아, 가동하고 있네요. 어쩌면 저희가—"
 
반응 왜곡의 뿔들이 응력파처럼 선채 내부를 휘돌았다. 라스푸틴의 경고 신호가 전면창 HUD에 쏟아져 내렸다.
 
"꽉 잡아!"
 
아나는 조종간을 강하게 밀면서, 쏟아지는 레이저 포화 앞에서 반사적으로 몸을 숙였다. 선수 추진기가 포효하며 조종간을 잡은 손에 진동이 전달됐다. 아나는 우주선을 수직으로 세우고 연속 횡전을 시작하며 후속 사격을 피했다. 레이저가 우현을 얕게 스쳤다. 도탄이다. 충격파가 선체를 뒤흔들었다.
 
"붉은 거장, 받는 공격 벡터를 전부 표시해 줘! 진주, 쐐기를 장전해!"
 
우주선 하부가 갈라져 열렸다. 진주가 무기 발사기의 포수 기관에 접속하자, 전쟁쐐기 여섯 발이 장전된 드럼식 발사기가 선체 밖으로 빠져나왔다. 전면창 HUD에 신호가 번쩍이며 나타났다. 진주는 항로를 가로막은 전쟁위성 열다섯 기를 향해 전쟁쐐기 두 발을 발사했고, 아나는 우주선을 살짝 비틀어 다가오는 레이저 포화를 피했다.
 
스파이크가 장착된 전쟁위성 두 기의 보안 소프트웨어가 라스푸틴의 공격적인 동화에 굴복하자 자동 방어 프로토콜이 무력화되고, 사격도 중단되었다. 다시 깨어난 전쟁위성은 스파이크를 스포크에 병합한 후 회전하여 아직 적대적인 다른 위성을 향해 사격을 시작했다.
 
그리고 동화된 전쟁위성 두 기는 접근하는 아나와 진주를 보호할 수 있는 위치로 이동했다. 진홍색 섬광이 전쟁위성 방패 주위로 번지고, 레이저가 이들을 파고들었다. HUD에 쏟아지는 포화 속 빈 곳이 표시되었다. 그녀는 순간적인 기회를 포착하고 주 엔진을 최대한 가동했고, 전 동력을 기동 추진기에 보내 우주선을 라스푸틴의 방패 아래로 미끄러뜨리며 진주를 위해 공격로를 열어 주었다. 
 
진주는 쐐기를 네 발 더 발사했다. 명중이었다. 라스푸틴은 쐐기가 전쟁위성을 꿰뚫을 때마다 디지털 역병을 위성의 프레임워크에 퍼뜨렸다. 복종을 요구했다. 레이저가 사방에서 밀려들었고, 아나는 결투하는 위성들 사이로 끼어들어 선체를 회전시키며 교차하는 포화를 회피했다. 충격파가 선체를 뒤흔들었고, 저항하던 전쟁위성들이 하나씩 폭발하거나 무력화되면서 어느새 사격은 끝나 있었다.
 
예속된 전쟁위성과 파편들이 작동을 중단한 채 행성의 궤도류 위를 떠돌았고, 중심해의 빛이 그 뒤를 환하게 밝혔다. 위성들 너머 크림색 구름의 대기 위로 카일루스 기지가 어렴풋이 보였다.
 
아나는 숨을 내쉬었다. 도약한 이후 내내 참고 있었던 것만 같았다. 그녀는 헐떡이며 아픈 폐 속으로 억지로 공기를 밀어 넣고 우주선이 기지를 향해 미끄러져 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진주가 포수 기관에서 빠져나와 계기판 위쪽에 날아들었다. 포와 데임이 의체 아래에서 나타났다. "어떻게 된 거예요, 아나? 아까 일이요."
 
"전쟁위성 말이야, 아니면 이상한 중력 말이야?"
 
"그… 둘 다요."
 
"난들 알겠어."
 
"제가 생각하는 게 맞다면 걱정되는데요."

"그냥 데이터만 뽑아내고 돌아가자고."
 
"좋아요."
 
아나는 두 손으로 머리를 붙잡으며 냉소적으로 말했다. "완벽하긴 개뿔."
 
카일루스 기지
 
동력을 잃고 어둠에 잠긴 채, 기지는 서서히 추락했다. 아나가 차분하게 접근하는 동안 기지의 이름표가 서서히 커졌다. 라스푸틴의 전쟁위성 부하들이 방어 대형으로 그녀를 둘러쌌다. 기지는 회전하여 행성을 바라봤다. 행성은 가스상 거대 혹성의 위엄을 한껏 자랑했고, 반투명한 외피에는 바다 거품의 반영에 뒤덮인 적막한 내장이 비쳤다. 진주는 전쟁위성의 데이터 저장소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기지 청사진을 샅샅이 살폈다. 카일루스는 발사 격납고가 포함된 긴 축과 그 양쪽 끝의 막대기 같은 통신 집합체로 구성되어 있었다. 발사 격납고를 지나 들어가는 안쪽은 대부분 정비 프레임 구획이었고, 거기엔 두꺼운 유리의 관측 천장이 구비된 대형 강화 메인프레임 하우징이 있었다. "생물군" 1, 2, 3이라는 표시와 함께 궤도를 도는 고리위성은 기지 허브의 외부 표면에 장착된 금속 가로대에서 뻗어 나오는 자기장 격자에 고정된 채 중앙 구조물과 보조를 맞춰 느긋하게 회전했다.
 
진주는 동력이 공급되지 않는 도킹 지점을 몇 개 찾아낸 후, 기지 발사대 중 하나로 진입하자는 결정을 내렸다. 진주가 전면창 HUD로 신호를 보냈다.
 
"여기요. 이쪽은 열려 있어요. 아닌 것 같아도 외륜이 아직 가압되고 있고요."
 
"우주 유영할 준비 됐어?" 아나는 그들을 발사대로 이끌었다. 회전하는 고리위성의 투명한 태양 전지 패널이 눈에 띄었다. 깨끗한 물이 분할 체 아래의 외륜을 따라 흘렀다. 흙 위로 싹이 잔뜩 솟아나 있었다.
 
"저거 온실이야?"
 
"그런 것 같아요. 모든 게 '비상사태'라는 파일에 잠겨 있는 것 같아요."
 
"하나도 수상쩍지 않은데." 아나는 헬멧을 고리에서 들어 올리고 절대온도 18도를 사물함에서 꺼냈다.
 
"메인프레임에 접속해야 해요."
 
"언제는 안 그랬어?" 아나는 어둠에 잠긴 기지를 바라봤다. 행성이 다시 떠오를 시기를 기다리는 잠재력의 무덤.
 
진주는 아나의 탄띠를 준비했다. 진드기가 주목받기를 기다리면서 핀 다리를 가만히 두드렸다.
 
아나는 헬멧을 쓰고 전면창 개방 손잡이에 한 손을 올렸다. "그 녀석들을 데려가려는 건 아니지?"
 
*** *** *** *** ***
 
발사대는 고요했다. 도전을 앞두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실패를 거둔 풍경이었다. 우주선은 단 한 척뿐이었다.  둥글납작한 함선은 부서진 채 버팀대에서 떨어져 내려 발사 시도가 실패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기지가 천왕성의 빛을 마주하자 육각형 반사판이 우주 먼지처럼 반짝였다. 우주선의 부서진 이온 추진기 뒤쪽 벽에는 불에 타 검게 얼룩진 자국이 남아 있었다.
 
"추진 장치에 이온 셀이 빠져 있어요. 손상된 것 같진 않지만, 아무래도 문제가 많았던 모양인데요."
 
무중력 상태로 부서진 발사대 위를 떠가며, 진주는 기체에 빛을 비췄다.  빛을 반사하는 선체 안에는 엑소가 가득했다. 마네킹 같은 사체가 명주실에 매달려 얼어붙어 있고, 다양한 체액이 방울방울 그 주위를 둘러쌌다. 축 늘어선 전선이 생명이 사라진 형체들 언저리에 뒤엉켜 있었다. 그중 두어 구가 선체 안을 이리저리 떠돌았다. 가슴 판에는 동일한 로고가 깨끗하게 남아 있었다.
 
에코-1
 
아나는 발사대의 내부 에어 로크 옆에서 쓰러진 일꾼 프레임을 발견하고는 진주에게 이리 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진주는 빛을 내뿜으며 아나를 향해 다가왔다. 진공 속에서 잔해와 먼지가 움직이지 않고 남아 있었다. 발사대가 붕괴된 후로 서로 떠밀리고 이끌려 한자리에 모인 것들이 작은 중력 소우주를 형성하고, 과거 시대의 실패한 껍질 속에 갇힌 거짓 행성계를 만들었다. 
 
아나는 헬멧의 마이크를 켰다. "저기, 그냥 일반 프레임에 접속하는 건 어때?"
 
고스트가 프레임에 접근하여 작업을 시작했다. "이건 단순한 청소 로봇이 아니에요. 기지 관리자죠. 안으로 들어가 봐요."
 
아나는 한쪽 발을 벽에 대고 뒤쪽 에어 로크를 닫았다. 자력 신발이 찰칵 소리와 함께 타일에 부착됐다. 먼지가 덮인 바닥과 메아리치는 신음, 눅눅한 내음이 기지를 가득 채웠다. 식물과 흙의 퀴퀴한 맛이 호흡기를 통과하여 아나의 혓바닥에 밀가루 같은 막을 씌웠다. 그녀는 진주를 향해 돌아섰다. 고스트는 프레임 내의 잘못된 연결을 절단하고 동력 유닛을 충전하느라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작동은 할 거예요. 하지만 동력이 충전되지 않아요. 제가 연결되어 있는 동안에만 움직일 거예요."
 
"넌 정말 기적의 천사야, 진주."
 
진주가 가볍게 짹짹거렸다.
 
그녀가 끊어진 선을 납땜했다. "그리고 조금… 말이 많아질 거예요."
 
아나는 통로 안쪽을 바라봤다. 현재 위치에서는 에어 로크가 기지의 나머지 지역으로 흘러드는 강어귀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방 중앙에 도드라진 패널 강화 장치 위로 중앙 메인프레임 허브도 보이는 것 같았다. 메인프레임은 반투명한 지붕 아래에 놓여, 멀리 떨어진 고리위성의 광륜이 드리우는 그림자에 둘러싸여 있었다. 양쪽에는 발사 격납고와 같은 방향으로 계단이 있었다.
 
프레임이 불꽃을 튀기며 깨어나 아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리고 귀에 거슬리는 쇳소리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나 브레이, 어서 오세요! 브레이 가문의 일원을 이곳에 다시 모실 수 있어 정말 기쁩니다. 아주 오랜만이군요."
 
아나는 말문이 막혔다. 진주는 어깨를 으쓱하는 듯한 몸짓을 했다. 무중력 상태에서 잔광은 주위로 번져 나갔다.
 
프레임은 자력이 유지되는 두 발로 일어나 먼지를 털어내다가 하마터면 진주와 부딪힐 뻔했다. "미안해, 꼬마 서보 로봇."
 
"서보 로-?"
 
프레임은 아나를 향해 돌아섰다.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동력을 뽑아 버릴 거야."
 
프레임은 진주의 말을 무시했다.
 
아나는 진주를 보며 싱긋 웃고는 프레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같이 가자."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경쾌하게 기지 안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둘은 진주를 끌고 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기지의 주 구획은 버팀대로 지탱되는 넓은 공간이었다. 커다란 붉은색 글씨로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에코 프로젝트
우리의 유산이 새로운 지평을 구축한다
 
정비 프레임 강판 수십 개가 바닥에 줄지어 있었다. 열린 것도 있었고, 재난에 대응하려던 프레임이 붕괴되면서 반쯤 올라온 것도 있었다. 엉망이 된 풍경이었다.
 
"아틀라스에 관한 얘기는 아무것도 없군."
 
아나는 다음 질문을 기다리는 프레임에게서 아쉬운 시선을 돌리고 반투명한 천장 너머를 바라봤다.
 
"그러니까 저 고리에 있는 작물은 식민지 임무에 보급할 식량이었다고."
 
"네. 물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나 브레이."
 
"그래. 식민지 우주선은 엑소로 가득 찬 건가?"
 
"일부만 그렇습니다. 에코-1과 에코-2에는 엑소 유닛 승무원이 탑승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들의 임무는 식민지 M31 사이트 A와 사이트 B의 배아를 구축하고 발달 과정을 감독하는 것이었습니다."
 
"라스푸틴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해도 그를 초기화할 계획은 아니었겠지."
 
"클로비스 1~12 디렉터리에는 접근 권한이 없습니다."
 
"그냥 그가 이길 거라고 생각했겠지. 항쇄는 최후의 수단인 패닉룸이었을 테고."
 
"클로비스 1~12 디렉터리에는 접근 권한이 없습니다."
 
진주의 홍채가 팔락거리며 둘 사이를 바삐 오갔다. 작은 빛의 목줄에서 윙윙 소리가 났다.
 
아나는 손바닥을 주물렀다. "여기에서 내 역할은 뭐였어?"
 
"아시다시피 전쟁지능에 관한 일에 참여해 주신 결과, 당신은 후보자 선택을 감독하는 주요 요인으로 선정되셨습니다."
 
"내가 저기 들어간 사람을 골랐다고?"
 
아나는 회전하는 고리위성을 바라봤다. 머릿속에서는 같은 말이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기지가 계속해서 회전하고, 인공 밤이 인공 낮으로 바뀌었다.
 
"아시다시피, 그렇습니다. 추가로 전쟁지능에 관한 당신의 과업이 클로비스 1~12의 설립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후보자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내가 알고 있었나? 다들 자원한 거였어?"
 
"후보자 프로필에는 접근 권한이 없습니다."
 
아나는 눈을 감고 차분하게 호흡을 골랐다.
 
"내가 항쇄 기지 설립을 도왔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뭘 한 건데?"
 
"클로비스 1~12 디렉터리에는 접근 권한이 없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헬멧을 내려 어깨 위에 얹었다. "내가 이야기를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 이 기지에 연결된 현장이 또 있나?"
 
그녀의 시선은 먼 곳의 고리위성으로 돌아갔다. 이제는 다시 떠오른 행성의 빛으로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그녀의 강화된 눈이 세부적인 형태를 파악했다.
 
"아시다시피, 브레이 양, 이 기지는 클로비스 현장 열세 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열세 개? 열세 번째는 뭔데?"
 
식물은 아직 생기가 넘치는 모습으로,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파라곤 접속에서 해당 정보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저 얘기 들었어, 진주? 우린 모두 환경의 노예일 뿐인 것 같아."
 
진주가 재잘거렸다. "전 우리 선택에 조금이라도 의미가 있으면 좋겠어요. 적어도 제 선택이 그렇다면 좋겠고요."
 
아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당신은 브레이입니다." 프레임이 멈췄다. 
 
웃자란 식물도 없었다. 
 
잘 관리되어 있었다.
 
 
"그래서?" 아나는 프레임을 향해 돌아섰다.
 
"에코 프로젝트에서는 기지와 <음성 암호화 작동 개시> 데드록 <음성 암호화 해제> 자원을 연결해야 합니다."
 
아나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주, 암호화 기능을 정지시켜." 어깨 너머로 멀리 중앙 고리위성에서 반짝이는 빛이 방출되었다. 생물군 2.
 
진주가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왔다. "뭐죠?"
 
아나는 진주를 바라봤다. "음성 암호화 말이야." 그녀는 잠시 멈춰 서서 진주의 시선을 따라 천왕성을 바라봤다. 아나의 두 눈이 이글거리는 빛을 받아들이려고 조정되었다. "뭐지?" 그녀는 바이저 위에 손을 올리고 눈을 가늘게 떴다.
 
먼 고리위성에서 뻗어 나온 이온 창이 기지를 꿰뚫었다.
 
창이 아나의 가슴을 관통했다.
 
붉게 물든 공기가 쉬잇 소리를 내며 섬유가 타들어 가는 우주복에서 배출되었다.
 
진주는 당혹스러운 충격에 빠져 홍채를 활짝 펼쳤다.
 
 
소금처럼 거친 음조로 비탄의 폭풍이 아나의 헬멧 안쪽에 몰아쳤다.
 
 

적개심

에코-1
카일루스 기지 — 붕괴
 
"데드록 점령 계획 실행 중: 기지 관리자가 에코-1 발사 격납고에서 수동 조작 개시."
 
"경보: 기지의 동력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비상 동력 이용 가능 기간은—
 
에코-0
그는 홀로 깨어났다. 운이 좋았다. 주위에 걸린 다른 이들은 아직 꿈 속에 남아 있었다. 전기가 그의 온몸을 타고 흘렀다. 그의 눈앞 스크린에서 시각 자료와 함께 녹화된 기록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에코-1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떠나시기 전에 기지 관리인에게 브리핑을 받으셔야 합니다. 기지 관리인이 누구인지 생각나지 않으면 승무원 대장에게 알려 주세요. 자, 전 아나 브레이라고 합니다. 당신은 에코 프로젝트에 선정된 운 좋은 후보자 중 한 명입니다. 인류의 미래가 당신의 어깨에 달려—"
 
영상 재생이 중단되고 기지 전체에 비상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기지 위험 요소: 중력 이상 | 비활성 중성미자 분출 | 차분하게 제자리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방송 중단: 에코-링크 경유//:항쇄-하위 잠금.R.R//:하늘충격 경보: 일시적 근외계 사건:—
 
동력이 끊어지며 기지가 요동치는 천둥 소리와 함께 붕괴되었다. 엑소는 온몸에 힘이 빠져 축 늘어졌다. 다음 초기화가 진행되기 전까지 생명이 사라졌다.
 
에코-7
 
홀로. 
 
기록. 새로움 속에서 낯익은 요소가 눈에 띄었다. 얼굴에 비친 얼굴은 어딘가—
 
"기지 위험 요소: 보호막 1, 2, 3에 규칙적 쇄도. 차분하게 제자리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천둥. 죽을 듯한 고통. 정전기의 정화로 초기화가 발동되었다. 
 
에코-22
 
그는 요동치는 천둥 같은 어둠과 고통 속에서 깨어났다. 화면은 꺼져 있었다.
 
밖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주 추진 시스템 가동이 중단되고 있습니다. 보조 시스템도 소진되기 직전입니다. 행성 충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구조 요청을 전송했습니다."
 
의미 없다. 그는 사슬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다. 
 
영겁의 시간이 흘렀다. 그를 묶은 구속은 깨지지 않았다. 그의 정신은 조각나고 오염됐다.
 
피를 흘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죽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관리인들이 어디 있는 건지 궁금해졌다.
 
에코-41
 
혼란과 고통이 가득한 짧은 삶. 추락하는 그는 사방을 향해 손을 뻗었다. 붙잡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에코-89
 
다시, 천둥.
 
에코-173
 
그리고 또 다시.
 
에코-390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헛된 시간의 흐름 속에 멈춰 섰다.
 
고독 속에서 광기가 스멀스멀 내면으로 파고들었다.
에코-877
 
천둥. 천둥. 천둥. 
 
수많은 폭풍이 지나간 후 마침내 관리인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뒤틀린 약속이 그의 귀에는 새롭게 들렸다. 
 
"우리가 돌아가면." 정신에 새겨졌다.
 
깨어나고 잠잤다. 싸웠다. 꿈꾸고 깨어났다. 싸웠다. 끝없이. 헤아릴 수도 없이. 사산. 무덤의 발작. 우레 같은 고통. 달콤한 죽음.
 
 
에코- 2̷͉͙̜̗͍̙̭̤̘̪͖͈͛̅͑̈̀̾6̸̡͇̼̦̲̩͎̟̠̬̳̲̂̀̉͐̃̈́ͅ2̵̡͎͚̳̠̫̮͉̍̉̌̒͑̓͗͛̉̈́̕̚͝5̸̨̭͚͔̥̲̫̈́̂̈́̊̋͗͑͛͑͝͝
 
마지막 천둥. 폭풍은 생명을 주었지만 빼앗으러 돌아오지는 않았다.
 
그는 썩어 버린 족쇄에서 빠져나왔다. 오랜 세월에 닳아버렸다. 연약해져 조금만 움직여도 부러졌다. 수많은 회전이 반복되는 동안 움직이지 않고 기다려야 했다. 자유?
 
질문이 커졌다. 몸 안에서 허기가 차올랐다.
 
그는 기지 안을 돌아다녔다. 무덤 구역에서 정신의 껍질로, 다시 봉인된 우주로. 어둠 속에서, 빛 속에서.
 
정신의 껍질이 그에게 새로운 길을 가르쳐 주었다. 고리의 장엄함을 가르쳐 주었다. 열쇠를 가르쳐 주었다.
 
그는 고리 위를 걸었다. 
 
작은 자유를 보듬었다. 그는 경작했다. 길렀다. 미처 알지 못한 채 원래 그가 했어야 하는 일을 했다.
 
정신의 껍질이 교각에 대해 말해 주었다. 그의 조상에 대해 말해 주었다. "에코 링크"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 지식은 그의 생각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일상을 넘어선 의미를 찾았다.
 
무덤 구역에는 비밀이 감춰져 있었다. 그는 고리 위를 걸은 이후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주 얕은 매장소였다.
 
형제자매들이 꿈을 꾸고 있었다. 그들은 그처럼 깨어나지 못했다. 
 
그는 그들의 무덤에서 보물을 파냈다. 감옥의 여러 정신으로부터 지식을 파냈다. 
 
진실의 뼈다귀에서 거짓을 골라냈다.
 
지나간 에코들의 기억을 들이켰다.
 
감옥의 목적을 찾았다. 교각의 끝. 그가 이쪽 끝을 붙잡으면, 어쩌면 관리인이 반대쪽을 붙잡을지 몰랐다.
 
수많은 정신. 기만자의 말. 빼앗는 자들. 그들은 그가 탈출한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관리인은 새로운 족쇄를 채우러 나타날 것이다.
 
그는 준비했다. 관리인의 연금술로부터 학습했다.
 
한때 장대했던 무덤의 사체를 파헤쳤다.
 
텅 빈 그릇에서, 그는 멀리 떨어진 별빛의 힘을 손에 쥐었다. 그 육신으로부터, 자신을 
거짓의 망토로 감싸 속였다. 그는 목숨을 빼앗는 천둥으로부터 자신의 영혼을 지켰다.
 
그리고 교각의 자기 쪽 끝을 열고 기다렸다.
 
에코- 2̷͉͙̜̗͍̙̭̤̘̪͖͈͛̅͑̈̀̾6̸̡͇̼̦̲̩͎̟̠̬̳̲̂̀̉͐̃̈́ͅ2̵̡͎͚̳̠̫̮͉̍̉̌̒͑̓͗͛̉̈́̕̚͝5̸̭͚̈́̂̈́̊̋͗͑͛͑͝͝- 현재
 
그가 고리를 걷고 있을 때 그녀가 도착했다.
 
관리인은 최종적인 심판과 함께 나타났다. 
 
붉은 빛이 그녀의 등에 몰아쳤다.
 
그녀는 그가 바라던 대로 교각을 따라갔다. 그녀는 여러 껍질을 이끌지만 오직 하나만 그녀와 함께 내려왔다.
 
그녀는 천둥을 데려왔고, 그는 그 사악한 불꽃이 두려웠다. 그는 자신의 장갑 프레임을 믿었다.
 
그리고 그녀가 무덤 구역에 침입하는 것을 지켜봤다. 그녀가 정신의 껍질의 장대한 전당을 더럽히는 모습을 지켜봤다. 
 
관리인들은 뿌려진 것을 거두었다.
 
관리인들이 으레 그렇듯이.  그녀는 그를 거두러 왔다.
 
그는 별빛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관리인을 그리 쉽게 처치할 순 없었고, 그녀에게는 동료가 많았다.
 
 
 

후손

카일루스 기지 
 
궤도 — 천왕성
 
그녀는 가라앉았다. 
 
팽팽해진 표면에서 빛이 흔들렸다.
 
멀리 아래쪽에서 무언가 꿈틀거렸다.
 
빛이 눈먼 자를 환하게 밝혔다. 
 
라스푸틴은 끔찍한 고통의 불협화음과 함께 흐느꼈다.
 
아나는 헐떡이며 숨을 몰아쉬었다. 머릿속이 빙글빙글 돌았다.
 
(!) 저산소 경고: b/o 73% (!)
 
"가만히 있어요! 우주복에 구멍이 뚫렸어요!" 진주가 아나의 뚫린 우주복에 빠르게 빛을 주입했다. 산소가 빠져나오며 그녀 주위에 여기저기 안개구름이 형성되고, 진주는 홍채를 펄럭거리며 우주복 이곳저곳을 살폈다.
 
아나는 머리를 흔들어 아찔한 현기증을 떨쳐내려 했다. 스멀거리는 연기를 피워 올리는 프레임이 몇 미터 떨어진 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녀는 메인프레임 사무실까지 이어지는 지지대에 몸을 찰싹 붙였다. 
 
"맞았어…" 새삼 깨달음이 찾아왔다. "맞았어?"
 
아나는 가슴을 두드리며 몸을 뻣뻣하게 긴장했다. 그녀는 얕은 숨을 들이쉬었다.
 
"진주, 어디서 발사한 건지 봤어?" 
 
"중앙 고리요. 제가 엄폐물까지 끌어다 놨어요. 그렇게 움직이지 마세요."
 
그녀는 지지대 옆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이온 줄기가 스쳐 지나가며 헬멧을 때렸다. 
 
라스푸틴이 그에 응답하듯 이온 광선이 발사된 지점의 주변 10미터 범위를 하나도 남김없이 소멸시키려 했다. 
중앙 고리위성의 일부 구획이 거센 포격에 폭발을 일으켰다. 고리는 붕괴되고, 접합선을 따라 쪼개진 후 우주로 흩어져 나갔다. 광륜이 부서져 기지의 중앙 구조물로부터 떨어져 나가자, 자력 닻도 작동을 중단했다. 부서진 조각들이 행성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카일루스의 잔해가 존속 살상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천왕성을 향해 추락했다.
 
"라스푸틴, 그만둬!" 그 즉시 레이저 포격이 중단됐다. "그러다 이 기지 전체가 파괴되고 말 거야!" 
 
잔뜩 긴장한 손가락이 예민한 방아쇠 위에서 기다렸다. 아나는 굶주린 폐를 달랬다.
(!) 저산소 경고: b/o 67% (!)
 
"아나, 잠깐만 천천히 숨을 쉬어요." 진주가 아나의 머리 위에 떠올라 재빨리 바이저를 봉인했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아나는 부들부들 떨며 일어선 후, 떨어져 나와 머리 위에서 회전하는 고리위성을 가리켰다. "각도가 좋지 않아."
 
"뭐가 쐈는진 몰라도 이미 죽었을 거예요.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착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으니까."
 
잔해가 아나의 어깨 너머 먼 곳에서 흐릿하게 보였다. 남은 광륜 두 개는 형제의 최후를 인식하지 못하는 듯 천천히 회전을 계속했다. 으스스한 왜곡이 기지와 고리 사이의 거리를 가로질렀다. 얇은 투명 장막에 감싸인 형체가 활공하며 잔해와 부딪히자 일시적으로 투명 효과가 상실되었다. 라스푸틴이 그 이상 현상을 인식했다. 
 
화음을 이룬 차임벨 소리가 아나의 바이저에 울려 퍼졌고, 균일한 패턴의 상동성으로 결합되었다.
 
"활성 위장이라고?" 아나는 희박해진 공기를 빨아들였다. 쌕쌕거리는 소리가 호흡에 뒤따랐다. "진주, 청각 시각화기를 준비해 줘."
 
진주는 위잉 소리와 함께 아나의 전투복에 다시 연결되었다. "인터페이스를 컴파일합니다. 잠깐만, 가만히, 계세요."
 
(!) 저산소 경고: b/o 65% (!)
 
아나에게서 20미터 떨어진 지점 천장 패널이 폭발하듯 부서지며 작은 플라스틱 파편들을 쏟아냈다. 파편은 기지가 다시 밤으로 접어들기 직전 천왕성의 마지막 빛을 받아 작은 중성자 별처럼 반짝였다. 비정질의 형체가 쿵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져 타일을 깨뜨리며 먼짓가루를 피워 올렸다. 위로 솟아오른 먼지가 천천히 제자리에 머물렀다. 그 형체는 데굴데굴 구르다 멈췄다. 그리고 그녀와 열린 발사 격납고 사이를 가로막고 서서, 동력이 소진된 이온 발사기를 옆으로 내던졌다. 육각형 패턴이 부들거리며 기지 내부의 모습과 뒤섞이는 사이, 방은 다시 음침한 어둠에 뒤덮였다. 아주 잠깐 엑소의 형체가 드러났지만, 은폐 장막이 다시 반짝이며 어둠에 적응하자 이내 모습이 사라졌다.
 
아나는 기다리지 않았다. 그녀는 무겁고 철컹거리는 신발을 빠르게 움직여 메인프레임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갔다. 불규칙적인 떨림이 심장을 때렸다. 진주는 아나 신발의 자력을 차단한 후, 강력한 빛의 파동으로 그녀를 문을 통과해 떠밀었다. 그리고 빠르게 아나의 뒤를 따라 달리며 빛의 바늘로 우주복을 마저 꿰맸다. 아나는 문을 쾅 닫았다. 
 
"아나. 잠깐만 버텨요." 진주는 아나를 바라보며 자력 신발을 다시 작동시켰다.
 
아나의 발이 바닥에 들러붙었다. 그녀는 바람에 구부러지는 나뭇가지처럼 바닥에 매달렸다. 
 
진주는 우주복 덧대는 작업을 마무리했다. 새로운 섬유가 공기를 밀폐했다.
 
"괜찮아요, 이제 괜찮아요. 기절하지 말아요. 우주복에 산소를 다시 공급하고 있으니까."
 
(!) 저산소 경고: b/o 59% (!)
 
안정화하는 중…
 
어두워져 가는 방을 배경으로 바이저에 비친 메시지는 강렬하게 빛났다.
 
"청각 오버레이 완료. 바이저를 확인하세요." 진주의 목소리에 그녀는 집중력을 되찾았다.
 
"잠깐만… 시간이 필요해…" 아나가 헐떡이며 가까스로 말했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절대온도 18도를 꺼냈다. 숨을 쉴 때마다 메인프레임 방이 조금씩 또렷하게 보였다. 방 중앙에는 떡갈나무로 만든 커다란 책상 하나가 놓여 있었다. 책상 표면에 삽입된 콘솔 화면은 죽어 있었다.
 
라스푸틴이 공격자의 예상 위치를 HUD에 표시했다. 그녀는 뒤로 물러나 들어온 문에서 멀어지면서 반대쪽 계단 문으로 향했다.
 
바깥쪽에서 희미한 떨림이 눈에 띄었다. 우회. 신호 간섭처럼 공명하는 하얀색 노이즈가 바이저에 표시됐다. 그녀는 각각의 신호에 집중하며, 리듬을 벗어난 징후를 찾았다.
 
뒤쪽.
 
그녀가 빙글 돌아서자마자 엑소가 뒤쪽에 있던 두 번째 문을 뚫었다. 문이 경첩째 떨어져 나가며 먼지의 격류를 피워올리고, 요란한 소음과 함께 진주를 유리에 처박았다. 
 
"진주!"
 
아나는 어둠 속에서 순간적으로 공격자의 위치를 놓쳤다. 하지만 공격자가 단단한 표면을 밀치며 뛰어오르자 바이저에 신호가 발동했다. 그는 절대온도 18도의 탄환을 발사했다. 그중 일부가 표적에 적중했다. 탄환은 위장 장막을 뚫고 적의 모습을 드러낸 후 엑소의 외피에 맞아 무력하게 스러졌다. 엑소는 놀라운 속도로 거리를 좁혀와 그녀의 총 든 손을 붙잡았다. 아나는 전기 탄환을 발사했다. 작은 전기 줄기가 엑소의 금속 두개골을 헛되이 스치고 천장을 그슬렸다. 
 
아나 손가락과 손목의 뼈가 부러졌다.
 
(!) 저산소 경고: b/o 68% (!)
 
안정화하는 중…
엑소는 반대쪽 손을 뾰족하게 만들어 그녀의 복부를 향해 찔러왔다. 
 
"죽어, 관리인."
 
부신 본능이 아나의 육체를 뒤덮었다. 그녀는 상대의 손을 막았다. 둘은 뒤엉켰다. 아나의 눈앞이 흐릿해졌다. 그녀는 헐떡이며 숨을 몰아쉬었다. 산소를 갈망하는 팔 근육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의 내부에서 불꽃이 타올랐다.
 
"당장 떨어져!"
 
진주가 빠른 속도로 엑소에게 다가간 후 의체를 퍼덕거려 포와 데임을 엑소에게 던졌다. 진드기가 엑소의 외부 장갑 아래로 기어들어 가 시스템 전체에 따끔한 전기 충격을 가하며 소중한 몇 초 동안 관절을 억압했다.
 
진주가 다급히 아나 곁으로 날아왔다. 고스트는 자신을 해체했고, 회전하는 의체 조각들이 응집된 빛의 핵 주위를 맴돌았다. 진주는 찬란한 별이 되어 방을 가득 채우고, 흔들리는 수호자에게 빛을 과충전했다. 
 
아나의 부서진 뼈가 다시 벼려졌다. 빛이 두 눈을 채웠다. 그녀가 움켜쥐고 있던 엑소의 칼이 된 판금 손이 가루가 되어 버렸다. 영광스러운 태양 불길의 왕관이 바이저에서 피어오르고, 그녀는 이마로 엑소의 얼굴을 들이받았다. 엑소는 비틀거렸고, 불길은 진공 속에서 그대로 꺼졌다. 아나는 상대를 걷어차며 뒤로 물러났다. 
 
태양의 힘이 절대온도 18도를 삼켰다. 아나는 방아쇠를 당겨 천상의 징벌 두 발을 쏘아 보냈다. 그 탄환은 엑소를 관통하고 기지를 꿰뚫었다. 아마 수 광년 동안 비명을 지르며 우주를 가로지를 것이다.
 
엑소는 녹아내린 고철 덩어리가 되어 축 늘어졌다.
 
아직 숨을 쉬고 있었다.
 
"끈질기군." 아나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엑소의 머리에 총구를 가져다 댔다.
 
그녀는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엑소의 두 눈은 흔들리지 않고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렇게 죽기를 거부했다.
 
그것은 수포가 솟아나는 손으로 아나의 배지를 가리켰다.
 
"브레이. 관리인."
 
그녀는 지금 머릿속에 떠오른 유일한 말을 내뱉었다. "넌 누구였지?" 
 
그것은 주저했다. "에코."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몇 번이나 살았던 거야?" 그녀는 상대의 등록 번호를 찾아봤지만 이미 사라진 후였다.
 
그것은 그녀 뒤로 다시 한번 기지에 흘러들기 시작하는 천왕성의 빛을 바라봤다. "에코는… 키우고… 관리인은… 지킨다…"
 
"내가 그들을 어떻게 했지?"
 
*** *** *** *** ***
 
아나는 에코의 외피를 바라봤다. 책상 위 이제는 켜진 콘솔 화면이 바이저 뒤쪽 그녀의 얼굴을 회색빛으로 물들였다.
 
그녀는 회전하는 기지에서 죽은 듯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시간만 있다면 언제까지고 바라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진주가 그녀의 어깨를 쿡 찔렀다. "메인프레임 데이터를 확보했어요."
 
아나는 메인프레임 접속 콘솔 앞에서 아무 생각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천왕성이 다시 시야에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또 보았다. 그 행성이 기지의 창을 가득 채웠다. 그녀는 행성 표면을 따라 구름의 움직임을 그려 보았다. 오직 행성 표면에서만. 그리고 지난 번 회전에서와 얼마나 달라졌는지 비교했다. 그 아래에서는 다를까 생각했다.
 
안정적인 3화음이 아나의 헬멧 안에 가볍게 울리다가 깨진 바이저 유리에 붙들렸다.
 
한참이 지난 후, 그녀는 결심한 듯 말했다. "나머지 고리위성의 격자를 해제해. 전쟁위성이 탑으로 끌고 가면 될 거야. 그림자 네트워크에 또 쓸 만한 게 없는지 샅샅이 살펴보고. 뭐든 얻어 가는 게 있어야지…"
 
"아나, 서두르기만 하면 전쟁위성이 이 기지 전체를 끌고 갈 수도 있을 거예요."
 
카일루스는 다시 회전하여 그림자 속으로 들어섰다. 행성의 빛이 다시 시야를 벗어났다. 아나는 책상 위 용수철이 탑재되어 있는 슬롯을 찰칵 눌렀다. 덜컥 열린 슬롯에서 소유자의 이름표가 나타났다. 
 
클로비스 브레이
 
아나는 일어섰다. 침착하게.
 
"때로는 잊혀져야 하는 것들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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